gtag('config', 'G-RNRE535K9E'); 태종 이방원 왕자의난 1차, 2차, 간단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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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몰랐던 이야기

태종 이방원 왕자의난 1차, 2차, 간단 정리

by 서리니 2017. 9. 7.

태종 이방원 왕자의난 1차, 2차, 간단 정리



태종 이방원 왕자의난 1차.


정도전등이 태조 이성계의 병을 핑계삼아 왕자들을 궁으로 불러들인 다음 궁의 노비, 갑사 등을 동원하여 공격하고 자신들도 밖으로 응하기로 계획을 하게 됩니다.  이후 왕자들이 궁의 앞에 이르렀는데 태종 이방원은 궁문 앞에 불이 켜지지 않은 것을 보고 위험을 감지, 집으로 돌아와 이숙번, 조영무 등 40여명을 무장시켜 광화문 앞으로 달려갔는데 세자가 이방원 등의 군세에 놀라 전의를 상실하게 됩니다. 당시 정도전은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방원이 찾아가 집에 불을 지르고 울며 살려주기를 구하는 정도전을 그 자리에서 처형하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은 전도전의 사람들로 분류되는 신하들을 죄다 죽이고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반역을 꽤하여 종친들을 죽이려해 부득이하게 이들을 죽이고 말았다는 보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록들은 승자. 즉 이방원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라는 역사 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





아무리 정도전이라도 임근의 허락없이 어떻게 왕자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을 하였을 것이며, 왕자들을 죽이려고 부른 정도전이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는 것 역시 의심스러운 부분이며, 이방원의 사람은 이 당시 40여명에 불과하였는데 이정도의 인원으로 정도전과 궁안의 관병을 모두 제압했다는 것 또한 모두 의심스러운 기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난은 이방원이 하륜등 참모와 상의하여 철저한 준비를 한끝에 태조가 병으로 누워 있는 때에 맞춰 일으킨 반역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방원은 결국 이날 정도전을 비롯한 여러 이성계의 신하들을 죽이고 세자를 비롯한 이성계의 전처 소생 아들 두명과 사위까지 모조리 학살하는 등의 반란을 확실하게 성공하였으며, 이런 계기로 이성계와 정도전의 모든 꿈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 왕자의난 2차.


이방원 2차 왕자의난은 이방간의 난 또는 박포의 난이라고도 하는데요

1차 왕자의난을 거치면서 세력구조는 이미 이방원 쪽으로 유리하게 바뀌어 이들이 정치적인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사병을 거느리고 있던 동모 형제들이 여럿 있었으며, 그들 역시 세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죠, 이방원 입장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절대 무시할 수 없어 항상 그들을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이방간 역시 왕위를 계승하려는 야심이 있었으나 인격, 공훈, 위세가 이방원에 절대 미치지 못하였고 그리하여 항상 시기과 질추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안정한 형세 속에서 마침 지중추부사 박포의 밀고가 있었으니 박포는 1차왕자의난 때 정도전이 이방원을 제거하려 한다고 밀고하는 등의 난의 성공에 공이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논공행상 과정에서 일등공신에 오르지 못해 이방원에게 불평하다가 죽주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결국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박포의 성격을 이방원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상황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이방간이 이방원에 대해 불평하자 이방간의 거병을 선동하게 됩니다.

박포는 이방원이 앞으로 이방간을 죽이려 한다는 거짓 밀고를 했고, 이방간은 이 말을 믿고 사병을 동원하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 역시 바로 사병을 동원해 개성 시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고 결국 이방원이 승리하고 이방간과 박포를 체포하여

이방간은 유배를 박포는 즉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방원에 미치지 못하는 이방간의 머리와 욱하는 성질이 이 난의 패배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태종 이방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소멸이 되고 그의 정치적 세력을 더욱 강해 졌으며, 따라서 이방원의 왕세자 책봉은 결정된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난이 평정된 이후 이방원의 심복인 하륜의 주청을 받아들인 정종은 상황태조의 허락을 얻어 1400년 2월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했으며, 이어 11월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주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제3대왕 태종 이방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