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ag('config', 'G-RNRE535K9E'); 19세기의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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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몰랐던 이야기

19세기의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성립

by 서리니 2018. 7. 8.

19세기의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성립





19세기의 러시아는 쉽게 말해 시대에 뒤떨어진 힘이 없는 국가였다고 합니다.

'차르'라 불리는 황제가 전제정치를 계속하면서 농노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배경.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싸운 청년 장교들은 프랑스군을 보고서 자신들이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들은 1825년 12월에 무장봉기를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이 무장봉기를 '제카브리스트(12월당)의난)'

이라고 합니다.







이 난을 진압한 황제 니콜라이1세는 국내의 모순점들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오스만제국을 간섬하기 시작합니다. 19세기 내내 러시아는 국내에서 무슨 반정부운동이라도 일어나면 오스만제국으로 남하하는 정책을 전개해 나갑니다.

러시아는 농업국이었기에 수출 상품인 곡물을 내다 팔 수 있는 판로를 구한다는 명목도 있었습니다.


니콜라이 1세는 터키에 대한 그리스의 독립전쟁에서는 그리스를 지원하고 이집트-터키전쟁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터키를 지원하여, 흑해에서 보스포루스해협과 다르다넬스해협을 거쳐 지중해로 나가는 항로를 활보하고자 했지만 유럽 열강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직접 터키와 크림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터키를 지원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니콜라이 1세는 전쟁 말기인 1855년에 사망하게 되는데 자살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새로이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의 근대화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1861년에 농노 해방을 단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농임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눠준 것이 아니어서, 신분적으로는 해방이 됐지만 토지를 갖지 못한 농민은 지주에게 속해 있어야만 했습니다.